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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목 3.1절과 적극적인 그리스도인
작성자 임준배
작성일자 2010-03-08
조회수 1742

1919년 기미년(己未年) 3월 1일 정오 무렵, 파고다 공원이 있는 서울 종로거리는 수만 명의 군중으로 가득 메워졌고, 학생 한 사람이 단상 위로 뛰어 올라, [독립 선언서]를 낭독하기 시작했다.

“ 우리들은 이에 우리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유민임을 선언하노라......”

 

학생들은 광복가(일명 봉기가)를 부르며 앞섰고, 사람들은 그 뒤를 따라 [만세행진]을 시작했다.

“ 이천만 동포야 일어나거라 / 일어나서 총을 메고 칼을 잡아서 / 잃었던 내 조국과 너의 자유를 / 원수의 손에서 피로 찾아라 // 한산의 우로 받은 송백까지도 / 무덤 속 누워 있는 혼령까지도 / 노소를 막론하고 남이나 여나 / 어린 아이까지라도 일어나거라 ”

 

[3.1 만세운동]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.

3월부터 5월까지 열린 집회의 수는 모두 1,500여 회, 참가자는 200여 만명, 전국 218개 군 가운데서 211개 군에서 시위가 일어났다. 일본군 공식집계에 의하면 3,4월 두 달간 사망자 7,500여 명, 부상자 1만 6천여 명, 체포 4만 6천여 명, 그리고 49개의 교회와 학교, 715호의 민가가 불에 탔다고 하니 실제의 피해는 그보다 훨씬 더 켰을 것이다.(<한국사 100장면>,박은봉지음,가람기획:서울,1993년)

 

특히 한국장로교회의 인명피해 상황은 남자가 2,200여 명, 여자가 550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고 한다. 비록 이 [만세운동]은 [해방]이라고 하는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지만, 그로부터 36년이 지나 마침내 [해방]이라는 열매를 딸 수 있는 씨앗이 되었기에, 우리 모두에게 결코 굴욕적이지 않는 정신유산을 물려 준 것이었다.

 

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우리들은 일본에게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굴욕감을 느끼고 있다. 한 동안 [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사건]과 [정신대 사건]으로 끌려 다니는가 하면, 얼마 전까지 만 해도 [독도 망언 사건]으로 온 나라 백성들이 질질 끌려 다닌 것이 생각난다.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일본의 주체로 인하여 수동적이어야 하며 끌려 다녀야만 하는가?

 

기독교 신앙은 결코 수동적이거나 굴욕적이지 않다. 우리의 영을 과롭히는 사단에 대하여는 [능동적]일 뿐 아니라, 우리 앞에 펼쳐진 새 예루살렘에 대하여도 [적극적]이다.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며,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천국비유는 우리에게 [적극]과 [능동]을 가르치고 있다.

 

올해로 제91주년을 맞이하는 3.1절!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경과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. 약자라고해서 반드시 패자는 아니다.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약자는 필히 강자가 될 수 있다. 강자라고 해도 소극적이며 수동적일 때 비로소 그는 패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. 적어도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는 우리 자신이 약자이든 강자이든 [적극적]이며 [능동적]이어야 한다. 왜냐하면 우리는 결단코 굴욕적인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 받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, 더 이상 굴욕적인 역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.